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들이 왔다. 탈레반 정권 하에서 벌어질 학살과 억압으로부터 살기 위해 탈출한 난민이 되어서.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여성을 해방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던 미국이 떠난다. 그리고 한국은 점령국일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위치에서 평화유지군이라는 거짓 이름을 달고 아프가니스탄의 질서유지와 재건을 도왔다. 파괴 후의 재건이라는 모순된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대해 합리화할 힘을 가진 미국에 보조를 맞춘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가족> 등으로 유명한 일본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 보면 날 선 비판으로 담겨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후 일본 또한 파병을 했고, 그 파병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그는 주장한다. 모두가 파병을 찬성해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는 전쟁이라고.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다. 정당성을 얻을 수 없는 전쟁에 파병했고, 아프가니스탄에 군을 주둔시켰던 나라이다. 그곳에 통역이나 기타 일로 조력했던 민간인들이 있다. 그들은 구원되어야 했다. 난민이 된 조력자들은 한국으로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SNS에는 히잡을 쓴 억압받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고, 미국의 지배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한 탈레반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올라오고 있다. 히잡은 억압의 상징이고, 미국은 여성 해방을 위한 구원자라는 구도에 환멸을 느낀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철수하면 민족해방이라는 단순한 해석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알려진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펜과 칼: 침묵하는 지식인들에게』라는 책이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관해 비판적으로 글을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그 전에 일어났던 시리아 내전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점령과 억압과 해방이라는 말들이 가진 모순과 은폐와 회피와 방관 그리고 공모에 대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민족주의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파괴적인 침략과 지배를 중지시킬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말한다. 그 어떤 레토릭으로 말해도 침략은 침략이고 점령은 점령이며, 억압은 억압일 뿐이다. 시오니즘의 신화와 정당성을 그 어떤 말로 포장해도 감출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며 지속적으로 파괴를 일삼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을 죽음의 공포로 내몰며 가진 것들을 빼앗고 폭력으로 내모는 일들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고도 이렇게 팔레스타인에서 살아 온 사람들의 역사성을 무시한 채 ‘본향 되찾기’라는 과거 신화 속의 현실화가 가져온 인종차별적 범죄일 뿐임을 보여준다. 이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운다고 자처하는 지도자(PLO)의 무능과 부패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공동체 양식과 새로운 공존을 모색한다.
오늘 아프가니스탄들이 목숨을 구하고, 억압을 피하기 위해 한국으로 피난한 사태를 보며 이 현상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음을 이 책으로부터 알게 된다. 편협한 서구의 시각에서 전쟁으로부터 안전지대에 머무는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들이 내뱉는 그 어떤 말도 점령지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해방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우파든 좌파든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 속의 분쟁과 억압의 현실을 보는 관점이 누구의 관점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맨 등 부쩍 그 이름이 난민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들리는 국가가 된 것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밝혀야 한다. 이 책 『펜과 칼』이 그 진실에 한 발 다가가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글 | 정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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