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코로나 백신 접종, 세심한 계획 필요
전국적으로 코로나 4차 유행으로 인해 확진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거리두기 단계도 수도권 4단계 등 높은 강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우려스러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여름 휴가철과 시기가 겹쳐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져서 더욱 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방역 당국은 거리두기 강화, 선별검사 확대를 통한 코로나 전파 차단에 역량을 기울이는 한편, 근본적 조치라 할 수 있는 백신 접종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7월 20일 기준으로, 백신 1차 접종율은 32%, 완전 접종율은 13%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며 백신 수급도 원활하지 않아 보인다. 나이별로 예약 시기가 될 때 예약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예약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람들이 불만을 크게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민들 역시 백신 접종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특히나 코로나 관련 국내 정보를 모국어로 원활하게 접하기 쉽지 않은 이주민들의 입장에서, 백신 접종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따라서 정부 당국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이주민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잘 알리고, 이주민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기체류자 외 이주민들은 모두 백신 접종 가능
국적자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있는 이주민들은 다 백신 접종의 대상이다. 정부는 올해 초에 처음에는 건강보험 가입되어 있는 등록 이주민에게 백신을 접종한다고 했다가 좀 지나서는 체류비자가 없더라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등록 이주민들이 방역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주인권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가 반영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관광객이나 3개월 미만 단기체류자는 제외된다.
서울시의 백신 접종 Q&A 중에 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시 백신 접종 안내 Q & A> 중
– 외국인은 어떻게 예약하나요?
외국인 중 건강보험가입자는 내국인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위탁의료기관에서 접종 가능합니다. 미등록외국인 등 건강보험자격이 없는 외국인은 보건소에서 신청 및 접종합니다. 외국인 등록번호가 없는 경우 보건소에서 임시관리번호 발급 후 무료접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3개월 미만 단기체류자, 여행목적 방문자 등 제외)
정부가 펴낸 ‘코로나 바이러스-19 예방접종사업 지침 (지자체용)’에 보면, 역시 위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즉 원칙적으로 3개월 이상 체류하고 있는 모든 이주민들은 백신 접종 대상이 된다. 즉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나이별로 접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예약 사이트가 한국어로만 되어 있다. 각종 개인 정보를 적고 인증을 하고 의료기관을 찾아서 예약해야 하는데 이를 한국어로만 제공하는 것은 이주민들에게 일차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이주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다국어 사이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접종 관련 정보, 안내사항 등을 다국어로 번역하여 이주민 커뮤니티, 지역 지원센터, 사업주 등을 통해 최대한 이주민들에게 많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농어촌 지역 같이 이주노동자들이 휴무일이 거의 없고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이주민 접종 관련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들의 접종, 세심한 정책 필요
그리고 가장 세심하게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40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의 접종방안이다. 보건소에서 임시관리번호를 발급받고 접종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여러 이주인권 활동가들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보건소 별로 제각각의 답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앙 방역당국의 방침이 일선 보건소까지 제대로 내려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자체 보건소는 아예 그러한 방침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미등록 이주민이 전화를 했을 때 그 보건소에서는 미등록자는 접종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을 했고, 단체 활동가가 다시 전화하여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고 확인을 요청하자 그제야 확인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직접 보건소에 찾아가서 문의한 미등록 이주민이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미등록 이주민들이 보건소에 왔다갔다 하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임시관리번호 부여, 예약, 접종 등 몇 차례씩 보건소에 가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여 이주민 지원단체가 지역 보건소와 협의해서, 단체가 이주민을 대리하여 보건소로부터 임시관리번호를 받는 사례가 있다. 이는 미등록 이주민들의 고충을 덜고 접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지원단체와 보건소가 협력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 지역 보건소에서 얼마 후 이를 중단하겠다고 알려 왔다고 한다.
사실 미등록 이주민들은 보건소에 가는 것도 불안할 수 있고, 또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세 번 보건소를 방문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면 이와 같이 지역 이주민지원단체들과 협력해서 미등록 이주민들이 불안감을 덜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한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주말에 따로 보건소 운영 시간대를 설정한다면 더욱 백신 접종에 효과적일 것이다.
전국의 이주인권단체들은 지난 6월 22일에 공동 의견서를 발표하고 방역 당국에도 보냈다. 주요 내용은 ▲정확한 정보 제공: 국별 언어로 백신예방접종 안내할 것 ▲방역 부서에 백신접종 이주민 담당자 지정 필요 ▲농어촌 지역 출장 접종과 셔틀 운영, 접종 강제 휴무제 필요 ▲미등록자 접종률 제고를 위해 지원단체 통한 대리예약 허용 등이다.
한편, 각 지자체별로 백신 ‘자율물량’이 책정되어서 지자체가 관내 취약계층을 정하여 백신을 접종할 수가 있게 되어 있는데, 경기도의 경우 이와 관련된 수요조사를 하면서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어 고용허가제(E-9비자), 방문취업제(H-2비자) 노동자 숫자만 조사하고 미등록자와 동포비자 소지자는 제외로 표시해서 물의를 빚었다. 즉 사업주가 공문을 접했을 때, 백신 접종 대상에서 일반적으로 미등록자와 동포가 제외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미등록자에 대한 차별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이주인권단체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이주민 백신 접종 소외 없도록 해야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이주민 백신 접종에 대한 준비 상황은 더디고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8월에 40대 이하 백신 예약이 시작되면 2천 만 명이 대상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이주민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시기가 닥쳐서는 신경쓸 여력이 없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라도 방역당국, 지자체 등은 이주민 백신접종과 관련해서 이주민 지원단체, 커뮤니티 등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충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백신 접종에서마저 소외되는 것은 이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면역 달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 | 정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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