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무바락 Eid Mubarak!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평화가 오기를
5월 13일은 오랜 금식 기간인 라마단(Ramadan)이 끝난 다음날인 이드(Eid)이다. 내가 아는 무슬림들이 내게 “이드 무바락!”이라며 예쁜 그림들을 보내왔다. 아름답게 쓰여진 아랍어 캘리그래피와 아랍 곳곳에 있는 화려한 문양과 색감으로 타일이 올려진 이슬람 성원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보내왔다.
라마단은 금식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기 위해 금식을 행하는 날들이다. 거의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물조차 마시지 않으며 정해진 기도시간 동안 금식을 한다.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저녁을 먹는데, 이때 이프다리라고 하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 장시간 비어 있던 위를 보호하기 위해 우유와 바나나 그리고 단 음식들을 애피타이저로 먹는 셈이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저녁식사가 풍성하게 차려진다. 그럴 때는 이웃을 초대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둘러 앉아 먹는다.
집을 떠나온 이주민들 중 무슬림들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대신해서 일터의 동료들과 함께 이프다리와 저녁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가까운 이슬람 성원이 있다면 직접 기도하러 가서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시작된 후 이러한 종교적인 의례는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도 쉽지 않다. 누군가는 혐오를 목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폄하하고 비난하지만, 금식 후에 여러 이웃이나 친지나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행위는 너무나 따뜻한 의례이다.
이태원을 중심으로 할랄 음식을 팔아온 이주민 식당주인들은 돌아가면서 이태원 성원에 이프다리 음식과 저녁 식사를 대량으로 기부한다. 성원 안으로 들어가면 여성들의 공간과 남성들의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식사 시간이 가까워 오고 음식이 나눠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순서가 오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이들이 먼저 충분히 음식을 나누어 받은 이후에야 남성들의 차례가 된다. 그렇게 음식이 나누어지고 둘러 앉은 이들은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다. 이러한 시간의 경험을 다문화 이해 교육 안에 포함시켜서 동작에 있는 경문고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처음 경험하는 이 학생들을 위해 식사를 하기 전 이주민 무슬림들이 축복기도를 아랍어로 해주었다. 아이들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하면서, 아잔(기도소리)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잔 소리를 좋아한다. 처음 파키스탄에서 아잔 소리를 새벽마다 들을 때는 온 동네에 들리는 기도 소리가 웬일인가 싶어 놀랬던 적이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새 그 소리를 듣고 오히려 맘 편히 잠을 자게 되었다. 나의 파키스탄 시아버님은 노령의 연세에 간디처럼 흰 옷을 두른 채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나는 몸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면 일어나셔서 세수하시고 양치하시고 동네의 마스짇드(모스크)로 향하셨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던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여전히 그립다. 낯선 한국에서 온 며느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가끔은 내게 조카들 몰래 아이스크림이며 간식을 사다 주셨다. 파키스탄 음식에 고생하는 며느리 뱃속이 비어 있을까 걱정이셨던 거다. 결혼 후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파키스탄에서 시아버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온화한 모습으로 나와 아이들을 맞아 주셨고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그런 시아버님이 어느 날 용돈이 필요하다고 그러셔서 따로 드린 적이 있는데, 남편의 말에 의하면 아버님이 늘 형편이 어려운 주위 사람들을 챙기시는데 필요하다는 거였다. 꼭 내 손에서 받으시고 싶다고 해서 드렸다. 이슬람 종교에는 5가지 기둥이라고 불리는 종교적 행위 중에 자카트가 있다. 자기가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야 하는 종교적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마단 기간 동안 누구에게나 음식을 나눠 주는 행위는 종교적 의례이기도 하고, 이미 체화된 문화적 관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랍을 여행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늘 놀라고 어떻게 이렇게 까지 재워주고 먹여주는가에 감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랍 곳곳에서 분쟁은 끝이지 않고, 전쟁으로 인해 여행금지구역이 되어버려 그들의 환대를 받을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가슴 아픈 지역은 최근까지도 공습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과 강대국의 힘에 밀려 영토를 빼앗기고도 장벽에 가로 막힌 채 검열의 삶을 일상 속에서 이어가다 못해 공습 속에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이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최첨단 무기들의 공격을 받으며 공포에 떨고 있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무엇을 할 수 없는 일개 개인에 지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하지만 그 개인의 목소리를 모아 내어, 이스라엘과 FTA를 맺었다며 자랑하는 대한민국 정부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이 정부는 제대로 듣기를 바란다. 일본 식민지 지배에 분노하던 그 시절을 잊었는가 묻고 싶다.
매일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일상을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이 우리가 누리는 물질보다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현실적인 정책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물질을 향한 욕망과 경제적 강국이 되고 싶은 허상이 세상의 평화를 해치고 불행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이 타자를 파괴하는 기반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면 전혀 원하지 않음을 선언한다.
우리는 공존을 파괴하는 전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평화가 필요하다. 한쪽의 비워진 밥그릇에 내 밥을 퍼 담고, 한 상에 둘러 앉아 먹는 것으로 더 풍성함을 가져오고, 가난한 자를 기억하며 나누는 의미를 마음과 행위에 새기는 의례가 종교를 떠나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분쟁지역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드 무바락!”이라고 말하며 웃고 먹고 나누며 함께 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모두에게 평화가 오기를. “앗살람 알레이쿰!”
글 | 정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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