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나는 아랍의 봄 또는 쟈스민 혁명이라 불리는 아랍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 시리아에 다녀왔다. 대학원에서 전쟁인류학을 공부하다가 난민에 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이라크 난민들을 만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전쟁인류학을 가르치시던 이희수 교수님과 논의 끝에 시리아로 가기로 했다. 마침 교수님도 다른 분들과 버스로 아랍여행을 계획 중이셨기 때문에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홀로 여행길에 나섰다. 수교도 맺고 있지 않은 나라 시리아에 가기 위해서는 터키를 거쳐 가야만 했다. 주변인들의 우려와 걱정과 달리 새벽에 도착한 시리아는 안전했고, 제레미야 지역에서 한인 민박을 찾아 머물며 생각보다 쉽게 시리아에 머무는 이라크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민박에서 아랍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여성이 내 통역자가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이라크 출신의 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경험은 내가 두고두고 언급하는 에피소드들의 원천이다.
그렇게 시리아에서 연구를 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있지 않아 벌어진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한 시리아 전쟁은 내게 먼 일이 아니라 왠지 고향에서 일어난 일마냥 가깝게 다가왔고, 시리아에서 본 풍경과 사람들이 떠올라서 걱정이 되던 차에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활동 당사자가 시리아 출신이라는 점에서 나도 모르게 혼자 친밀감을 느끼며 꼭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지금은 언제든 연락만 하면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분주함을 핑계로 압둘 와합이라는 친구에 대해 깊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최근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바로 그에 대해 쓴 책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그 책을 보자마자 주문해서 한 숨에 다 읽었다.
지은이가 참 부러웠다. 이 책을 쓴 교사는 수줍음이 많다고 했고, 처음 만남에서 큰 감흥이 없었다고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얼마나 진심을 다해 와합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같은 활동가들은 그저 현장에서 가끔 볼 때 반가운 인사나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교사와 친구들은 마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당사자들과 같은 태도와 마음으로 와합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와합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건 중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시리아의 역사와 현실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을 배치해서 시리아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역시 교사다운 글쓰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십 년 전에 시리아에 가기 위해 책을 사려고 했을 때, 대형서점에서 한글로 된 것은 딱 한 권 뿐이었다. 참으로 답답해서 영어로 된 버전을 찾아서 읽기도 했다. 수교도 안된 나라이니 오죽할까 싶었다. 하지만 시리아에 가니 이미 아랍어를 배우겠다고 한국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와 있었다. 이 책에도 나오듯 와합이 만난 그 한국인 대학생들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그를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가, 공부를 위해 온 한국에서 뜻하지 않게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당사자가 되고,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나들며 가족도 구출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지 당시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연이 되고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산다는 것이 참 무섭다. 우리는 잠시 스치는 인연에도 그렇게 온 삶을 통해 서로 가로지르고 엮어진다. 이 책이 읽는 독자들에게 그 인연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글 | 정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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