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주노동자의
최소한의 노동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라
농업이주노동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서울]
7월 24일,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도 이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2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된 숙식비 지침에 대한 대응 방향,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등 법령 개정안, 그 외에도 계절근로 노동자제도에 대한 입장과 기숙사 무료 제공에 대한 입장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토론이 오갔다.
기숙사는 무상제공되어야, 고용허가제는 폐지되어야
먼저 민주노총 박유리 비정규전략사업부장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거권 보장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발제가 있었다. 박 씨의 발제에 따르면, 노동부가 2월에 발표했던 숙식비 공제 지침은 황당한 지침이었다. 최소한의 숙소 기준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임금 전액 지급을 원칙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숙식비 사전공제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노골적으로 빼앗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지침에서 명시하고 있는, 통상임금의 20%라는 숙식비 공제율은 지나치게 높다. 심지어 가스비, 전기요금, 냉난방비, 인터넷 사용료 등은 이 비용 안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또한 이 지침은 주거법상 건축물로 인정되지 않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을 ‘그 외 주거시설’ 이라는 이름으로 주거시설 안에 마음대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어서 박 씨는 6월달에 있었던 고용노동부와의 농업 분야 근로 실태 조사와 숙소 환경 개선 방안에 대한 협의 결과를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측은 숙소 최저기준 마련과 기준에 미달하는 숙소가 제공될 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제대로 된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또한 자리에 함께한 농장주들은 기수사 기준을 마련해 이에 미달할 경우 고용허가제 신청을 아예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방안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박 씨는 이주노동자 혐오 논리와 계속 싸워나갸야 함을 다시 한번 강변하며 숙식비 지침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 입장에 따르면 먼저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한 숙식비 지침은 폐기되어야 하며,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임금 보전, 숙소의 질 보장을 위해 기숙사는 원칙적으로 무상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발안정한 노동 환경을 조장하는 계절노동자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동시에 근로기준법은 숙소 기준을 제대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며, 고용허가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조치들이 유명무실해지지 않게 제대로 된 관리감독 시스템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외국인고용법, 근로기준법에 실효성 있는 주거권 보장 규정 마련되어야
사회자의 간단한 정리 이후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의 이현서 변호사가 이주민주거권개선 기획모임에서 정리한 ‘주거권 보장을 위한 법률 개정 제안’을 발제했다. 이 변호사는 먼저 외국인고용법과 근로기준법의 문제점을 각각 지적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발제에 따르면, 외국인고용법은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들어오는 노동자의 고용 관련 사항을 모두 다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가장 밀접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숙소나 식사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일반적인 숙소의 기준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모호하고 부실한 언급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관리감독 체계가 부실해 그나마 있는 규정이나 벌칙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ILO, 캐나다, 미국 등 해외 사례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ILO는 일반원칙 19조와 5조를 통해 노동자의 숙소에는 구조적 안전과 적절한 품위, 위생, 편의가 보장되어야 함, 이주노동자와 국내노동자는 동일한 처우가 보장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 선언이 그저 공허한 선언이 되지 않도록 Fact Sheet를 통해 구체적인 주거시설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구체적인 기준에 기반한 숙소 점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또한 이주 및 계절노동자 보호법을 통해 사업주가 주기적으로 구체적인 숙소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못한 숙소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있을 경우 노동자가 자유롭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들은 모두 상세하고 구체적인 주거 시설 기준을 제시해 사업주들이 추상적인 일반원칙을 오용할 수 없게 하고, 정해진 기준에 맞는 기숙사를 갖출 것을 고용허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법령 개정안을 제시했다. 먼저 제시된 개정안 중 근로기준법에서는, 기숙사가 필수적 주거 시설로써 갖춰야 할 기준이 있다고 명시하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현행법에 명시된 기숙사에 대한 조건 중 건강, 풍기와 생명 유지 등 모호한 표현이 근로자의 건강, 사생활의 보호 등 인간다운 생활을 살 수 있는 조치라는 명확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한 기숙사는 필수적 주거 시설로서 갖춰야 할 기준이 있다는 점이 명시되었고, 근로감독관의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이에 더해 개정안에서는 기숙사의 주위 환경, 위치 조건, 시설 규정, 최소 면적 조항, 일시 거주 인원 제한 등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들이 또한 추가되었다. 이 조건에 따르면 건축법에서 정한 건축물이 아닌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의 건축물은 기숙사가 될 수 없다. 또한 기숙사는 내화, 방음, 환기, 채광, 냉난방 등 생활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소음, 진동, 악취, 대기오염, 유해물질 등에서 자유로운 장소에 지어져야 한다. 또한 방에는 잠금장치가 갖추어져야 하며, 1인당 최소 14제곱미터 이상의 주거 공간을 갖추어야 하고, 1인당 3.3제곱미터 이상의 침실을 갖추어야 한다.
이어 이 변호사는 고용허가 요건에 기숙사 기준을 포함, 기숙사에 대한 법정 기준 및 근거 마련, 사업장 변경 사유에 기숙사 기준 추가, 기숙사 무상제공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발제했다. 구체적으로 이 개정안은 사업주가 외국인 고용허가를 신청할 때 기숙사 기준 요건을 충족하도록 명시하고, 기숙사 기준 요건은 근로기준법의 그것을 따르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해외 사례, 청소년 보호 시설 지침 등을 참고해 입지 조건에도 제한을 두었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숙사가 제공될 경우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변호사가 발제한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은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숙식비 사전공제지침이 이미 나와 있고,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농업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산업 특성상 숙소 선택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단, 이 변호사는 영세한 사업주들이 기숙사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만약 기숙사 무료 제공이 법률적으로 관철된다면 어느 정도의 정부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숙사 무상제공, 계절근로 폐지 입장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 있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며 새로운 논점들을 제시했다. 허오 대표는 먼저 이 변호사의 발제가 지금까지 주로 주거공간에 대해서 집중해 왔던 기숙사 관련 논의에서 벗어나 주위 환경까지했 시야에 넣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숙식비 지침이 정말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면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소송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어 허오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기숙사가 정해진 기준과 맞지 않을 경우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제안과 민주노총의 고용허가제 폐지 입장이 상충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용허가제가 폐지된다면 사업장 변경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허오 대표는 현재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기숙사 중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의 가건물이 이미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영세 사업주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무허가 건축물들을 일시가 아닌 단계적 방식으로 줄여 나가고,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의 주거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질 수 있는 방안 또한 생각해볼 수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업주들은 실제로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계 상황에 놓였다고 해서 농업 분야를 모두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허오 대표는 계절노동자 제도에 대해서도 논점을 제시했다. 민주노총에서는 계절노동자 폐지를 기본적인 입장으로 걸고 있지만, 오히려 모든 사람이 이주장벽 없이 원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이주는 국가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고, 농축산업 분야에서 계절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에 계절노동자 제도의 무조건적 폐지는 오히려 이주장벽을 높이고, 노동자들이 더 불안정하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입국하게 되는 결과만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어 마지막 발제로 의정부엑소더스의 윤영아 활동가가 자신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해 현장 실태를 보고했다. 윤 활동가가 방문한 기숙사는 비닐하우스 안에 꾸려져 있었는데, 부엌과 샤워실이 모두 한 공간에 있었다. 또한 문에 잠금 장치가 없어 철사로 묶어 잠글 수밖에 없었다. 온수 설비로는 온탕기를 이용했는데,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뜨거운 물이 갑자기 쏟아지고는 했다. 또한 기숙사 안에 화장실이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어 야간에 위험했고, 실제로 성추행 이슈도 발생했다고 한다. 정수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식수로 수돗물을 이용해야 했고, 이 때문에 복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윤 활동가가 만났던 이주노동자 중 9할 정도는 기숙사비를 사전공제당하고 있었다. 다들 이에 대해서 억울하게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항의할 경우 부당해고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지는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노동부에 진정을 넣은 경우도 있었지만 노동부는 출근 기록을 소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정해진 조사 절차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제기된 쟁점들에 대한 토론 이어져
패널 발제가 끝난 후 플로어 토론이 이뤄졌다. 먼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는 보다 나은 조건에서 거주할 수 있다면 현장의 이주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단기로 들어와서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기숙사에 추가비용을 내기 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임준형 노동자연대 활동가와 박희은 민주노총 기획국장은 기본적으로는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되, 원하는 이주노동자가 있다면 추가 절차를 거쳐 더 나은 조건의 유상 기숙사를 선택할 수도 있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숙식공제와 관련 소송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의 고지운 변호사는 숙식비 공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공제 부분은 돌려받을 수 있겠지만 이후 숙박비를 내라는 민사 소송이 제기될 경우에는 대응하기 힘들 것이고, 따라서 소송이 기숙사 문제의 주된 해법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현서 변호사 또한 이 의견에 동의하며 이 문제를 법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부당이득과 관련된 법 체계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계절근로제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3년동안 일하는 고용허가제 체제에서도 노동권을 지켜내가 쉽지 않은데, 3개월간 일하는 계절근로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계절노동 제도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허오영숙 대표는 정부가 계절근로 적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시점에 이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으며, 주거권 논의에 계절근로 노동자들도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유리 민주노총 비정규전략사업부장은 계절근로제도와 관련해 전국농민회총연맹과의 테이블을 구성할 예정이 있다고 밝히며 계절근로에 대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이주노동자 사이에서도 자신이 겪고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분노가 고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숙사 문제가 이주노동자들의 분노에 물꼬를 틀 수 있는, 한국 이주노동자 문제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기된 쟁점들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박유리 부장의 발언을 끝으로 토론회는 마무리되었다.
글 | 한건희 V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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