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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VOM피플] 이산가족 할머니와 시리아 난민 청년의 만남_<피난>의 섹알마문 감독 인터뷰

이주민방송MWTV 2023. 3. 11. 14:46

이주민, 한국 사회를 영화로 다시 바라보다➀

이산가족 할머니와 시리아 난민 청년의 만남

<피난>의 섹알마문 감독 인터뷰  

 

“한국 사람이 버는 돈에 비해 행복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 않나…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깨고, 우리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방글라데시 출신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숲씨  이주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반응이 뜨거웠어요. 소감을 한마디 부탁드려요.

 

마문  좋았지요. 한 사람의 감독으로서도, 그리고 이주민영화제를 준비한 입장에서도요. 

먼저 한 사람의 감독으로서는, 주위에 제가 영화를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사람들한테 제 영화를 보여줄 경로가 사실 별로 없어요. 그런데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를 보여줄 기회가 생긴 거니까요. 

이주민 영화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앞에서도 말했듯 이주민들이 영화를 만들어도 주목받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영화제를 통해서 사회가 이주민 감독들한테 주목하게 할 수 있어요. 이런 관심들이 궁극적으로는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이 노동자로 한국에 왔지만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식으로요.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제가 좋았던 것 같네요. 

 

숲씨  그동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많이 찍으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출품하신 작품은 픽션 작품이더라고요. 

전에도 픽션 영화를 찍으신 적이 있으셨나요?

 

마문  두 개 있어요. 데뷔도 픽션으로 했고요.

『파키』는 2013년에 제가 감독으로 만든 첫 작품이에요.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AMC Factory)에서 하는 이주민 감독 독립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고요. 여기에는 한국인 청년과 방글라데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나와요. 둘 다 꿈을 가지고 있지만, 꿈을 이루는 길이 쉽지는 않은 거예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인 청년도 살아가기 쉽지 않은 시대니까요.  

『굿바이』는 2014년에 찍었고, 한국에 나와서 살다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방글라데시 친구들의 이야기에요. 이 친구들이 15년 동안 한국 사회, 사람, 문화에 대해서 뭘 느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다룬 영화였고요.

『머신』도 2014년에 찍었죠. 제가 본 한국 사회는, 사실 굉장히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었거든요. 그걸 영화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는 사무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공장에 다니다 보면 3, 4년 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한번 헤어지면 연락을 안 해요. 그대로 관계가 끊어지는 거지. 진짜 기계와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돈은 많지만 행복을 못 누리고 있지 않나. 이런 걸 느낀 대로 표현을 해 보고 싶어요.

『하루 또 하루』는 다큐영화였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라고 딱지를 붙여서 단속하니까. 이걸 이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은 영화였어요.

 

숲씨  『하루 또 하루』는 영화를 제작한 다음에 좋은 소식이 있었죠?

 

마문  예. 주인공 쌰인 씨가 근로복지공단에도 일하다 다친 부분에 대해서 산업재해 인정도 되었고요, 출입국사무소에서도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서 합의를 보게 되었죠.

 

숲씨  마문 감독님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이주노조 활동가로서 두루두루 역할을 크게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제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피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마문  간단하게 소개하면, 시리아 난민 자말이 한국에서 이산가족 할머니를 만나는 이야기에요. 그 두 사람들이 과연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실제로 만나게 되는지 아닌지는 의문으로 남겨두고 끝나지만요. 사실 그동안 난민에 관련된 픽션을 다시 찍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계속 미뤄두고 있었는데, 재작년 이주민영화제에서 사전제작지원사업을 시행한다고 하니까 바로 신청을 넣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영화의 모티브는 인터넷에서 찾은 시리아 난민, 리차드 자말이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하고 <내 이름은 욤비>라는 책에서 얻었어요. 그 책 주인공도 난민 출신인데, 시골에 가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쳐준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주인공하고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시리아 난민을 할머니랑 만나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런 구상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TV를 보니까 이산가족 상봉 화면이 나오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아, 저 분들도 난민하고 비슷하구나. 난민들도 원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에 온 거고, 원하면서도 가족을 못 만나니까. 그래서 한번 난민과 이산가족을 결합시켜 본 거죠. 

 

숲씨  난민을 이산가족과 연결짓는 시선에 신선하다는 의견들이 많더라구요.  

영화를 보면 중간 중간 대사들이 참 좋았어요. 난민이나 이산가족이 다 무거운 주제인데, 그 얘기를 위트 있게 풀어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옥상에서 노래 부르거나, 마지막에 벚꽃 길을 달리며 소풍가고 그런 씬들은 굉장히 서정적인 면들도 있었고요.

 

마문  아직까지는 제가 한국어로 스크립트를 쓸 능력이 부족해서, 지구인뮤직밴드 멤버이기도 한 이율도 작가님을 소개받아서 도움을 좀 받았어요. 내용은 내가 알고 있고. 표현은 작가님이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콤비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분하고 같이 대본 작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옥상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원래는 집 안에서 하는 거였는데 정소희 프로듀서가 옥상을 보고 여기서 한번 해볼까 제안을 해줬었거든요. 사실 우리는 영화가 감독 혼자서 찍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양심이 있는 감독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자기 혼자서 영화 한편을 다 찍었다고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음악, 연기, 대본 등등 영화는 원래 공동 작업이니까. 그런 측면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거죠.

 

숲씨  배우 분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잠시 해 주시겠어요?

 

마문  자말 역할을 한 바부는 방글라데시 사람이고, 한국에서 2년째 평택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라주 역할을 한 친구는 몽골 출신 뭉크, 한국에서 4년 10개월을 다 채운 다음에 몽골로 돌아갔다가 대학생 자격으로 다시 한국에 와서 활동을 하는 친구입니다.  

다음에 어르신 역할을 맡으신 분은, 아마추어 배우신데, 정소희 프로듀서가 소개를 해주셔서 찍게 되었고요. 노인영화제 오디션을 통해 발굴되신 분인데, 연기 경력이 없다보니 오히려 과장된 연기가 없어서 좋았어요. 나머지 배우들은 공장 동료들을 통해서 소개받은 분들입니다. 특히 사장 역할을 맡은 친구는, 특별히 오디션을 보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연기를 너무 잘 해줘서 고마웠죠.

 

숲씨  저는 사장이 손톱을 깎는 장면이라던가, 딸에게 전화받을 때 혼자 있다며 나가는 장면들이 사장이라는 캐릭터를 잘 보여줬던 거 같아요. 그런 디테일한 장치들도 시나리오에 계산되어 있었나요?

 

마문  그 장면이 원래 좀 심심했어요. 그래서 손톱 깎는 장면을 추가했죠. 사람이 무시하려면 다른 걸 하고 있어야 무시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틱 틱 소리도 나니까. 또 사장들이 공장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딱 손톱을 깎는 게 떠오르더라고요. 전화 받고 나가면서 혼자 있다고 대사를 쳤던 것도, 다 그런 식으로 사장이 이 사람을 무시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배치해 보았죠.

 

숲씨  장면장면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었네요. 그 중에서도 만족스러운 장면이 있으셨다면요?

 

마문  만족스러운 장면이라……. 공장 사장이 안에서 닦달하던 그 장면과,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가 무심하게 구박을 주는 장면이 좋았어요. 그런데 거기 전에, 자말이 들어가서 할머니의 손을 잡잖아요. 그 장면은 감정이 덜 드러난 것 같아서 좀 아쉬워요. 

처음에 할머니가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이뤄준다는 뉴스를 보는데, 그 장면에서 할머니가 적십자에 전화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능동적으로 가족을 찾아보려고 하는 장면을 넣어볼 걸. 그리고 할머니하고 자말 둘이서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넣어 봤어도 좋았을 것 같고요.  

 

지금까지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는 사실 배우는 과정이라 잘 몰랐는데, 이번에 피난을 찍으면서 새로 느끼게 되었던 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이든 균형이 맞아야 한다. 내가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게 있고 넣으려고 해도 넣을 수 없는 게 있는 거예요. 요리할 때 소금을 치는 느낌. 아니면 쌈장을 만들 때 고추장과 된장의 비율을 맞추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피난을 찍으면서 아직은 이런 게 내가 좀 부족하구나. 이제 구성은 좀 자신이 있지만, 하나하나 대사하고 장면의 균형을 맞추는 걸 좀 더 잘 하고 싶다. 영화가 상영되는 걸 보면서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본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 판단력이 있어야 되는데. 영화라는 게 예술이잖아요. 내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예술가라고 하기는 아직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숲씨  앞으로는 어떤 작업들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마문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사회적인 이슈들을 영화로 표현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이슈가 있다는 건 사람들이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는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통해서 그 문제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나가고 싶어요.

 

숲씨  마문 감독님은 영화감독임과 동시에 이주민으로서 이주노동조합에서도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이 활동이 영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으신가요?

 

마문  지난번에 어떤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상담을 하러 왔는데, 얘기하다 보니까 그 이야기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이런 걸 사람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바로 영상을 찍어 놨거든요. 이건 이주노조 활동이 제 영화 작업에 영향을 준 케이스겠지요. 

또 『굿바이』 이거하고 비슷한 컨셉의 영상을 2년 전에 찍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마문이 찍은 굿바이와 내 작품이 얼핏 비슷하지만 마문 영화가 나보다 몇 배 더 표현을 잘했다고 해주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나를 감독으로 보지 않고 친구로 봐주잖아요. 좀 더 자연스러운 감정이 나오는 거죠. 이건 제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영화작업에 영향을 미친 경우인 것 같아요.  

그리고 반대로 이주노조 활동에도 제가 하는 영화 작업들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를 알릴 때 영화가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오먼이라는 분 얘기 들으면서도, 이걸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이건 잘하면 장편으로도 찍어볼 수 있겠다. (*편집자 주: 오먼 씨는 업무 중 생긴 사고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다. 이후 미등록 체류자 신분으로 지내던 중 보호소에서 다친 눈에 대한 산재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이어가던 중 끝내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먼 씨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지난 11월 9일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지난번에는 외국인보호소에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요. 그 친구는 단속 과정에서 피가 줄줄줄 흐를 정도로 부상을 입었는데도 병원엘 안 데려간 거예요. 보호소에 있는 다른 이주민들이 왜 병원 안 데려 가냐고 항의를 엄청나게 했더니 그때서야 병원엘 데려가고. 제가 그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왔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영화를 통해서 알려내야 되겠다. 내가 방글라데시 출신 감독으로서 이 부분은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숲씨  정말 소중한 역할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마문  근데 저야 뭐 사실 먹고 사는 거하고도 연관이 되는 거니까요. 저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거든요.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요. 이 활동을 올해로 5년째 하고 있는데 만약 대학에 다니면서 영화를 배웠다면 등록금만 얼마를 냈어야 했겠어요. 그런데 저는 조금이지만 활동비도 받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영화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저한테 무작정 나쁜 건 아닌 거죠. 물론 마냥 쉬운 일은 아니기는 해요. 애초에 한국에 온 건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거니까. 그 목적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고 있는 거죠. 

이주민들이 저와 같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요, 이주노동자들이 어린 나이에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는 하나밖에 역할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나도 그랬으니까. 뭘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안 갔어.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까 일종의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가 되면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것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에 왔더라도 좀 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문화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날 것 같은데,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힘든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 해서 한국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람들이 한국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되지 않나 싶네요.

 

숲씨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활동가이자 감독으로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 기대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  | 숲씨 웹진 VO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