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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테즈 바하두르 구릉의 마지막 가는 길

이주민방송MWTV 2023. 3. 12. 13:48

테즈 바하두르 구릉의 마지막 가는 길

제 목숨을 살지 못하다 가는 생명들을 돌보는 또다른 생명들

 

사라진 똥들과 분뇨처리장

 

똥들이 사라지는 이야기, 상상해보셨나요? ‘베이푸라이즈(Vapoorize)’라는 발명품을 똥 위에 칙 뿌리면 도시의 산책로가 깨끗해진다는, 도시인의 로망에 관한 미국 코미디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 ‘엔비(Envy)’의 마지막엔 사라진 똥들이 강에서 한번에 발견되어 환경단체들이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똥과 오물이 눈 앞에서 깨끗이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사회의 열망은 이를 한곳으로 모으는 밀폐시설을 건설합니다. 그런데 똥오줌이 모이고 처리되는 공간에는 ‘사람’이 없을까요? 아무도 가길 원치 않는 그곳에 ‘사람’이 먹고 자고 일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유독가스 농도가 높아져 질식사망사고 위험도 높아지는 돼지농장 분뇨처리장, 누구도 꺼려하는 일터를 이주노동자들이 점점 대신하고 있습니다.

 

돼지농장과 유독가스 질식사고

 

언젠가 도시의 밥상에 오를 돼지 7천마리가 모여 사는 경북의 한 돼지 농장. 마을과 떨어져 있는 이 농장 근처에 가면 악취가 진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 농장에는 네팔 청년 11명이 먹고 자고 일하면서 사나흘에 한번씩 돼지 똥오줌이 흐르는 길을 치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 두명이 지난 5월 그 오물이 발산하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습니다. 보름 후에는 경기도 여주의 한 돼지 농장에서 태국인, 중국인이 똥더미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사고 뒤 노동청 점검 결과 안전 위반사항 18건이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개돼지보다 못한 이주 노동자들의 죽음과 노동 환경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인들도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황화가스에 중독돼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그 좁고 악취 가득한 공간에서 집단사육되는 7천마리의 돼지들은 과연 안녕할까. 뜬금 없는 돼지 걱정이냐 할 지 모르지만, 지능 아이큐 60-70에 이르는 영물인 돼지를 그저 ‘삼겹살 300kg’, 식탁에 오를 고기 몇 점으로 치환해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축산업의 비극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구제역 문제, 질식사망사고 등으로 고스란히 사람에게 돌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축산농가 분뇨처리장 질식사망사건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5년간 매년 평균 2건씩 일어날 정도로 여름철에 축산농가에서 유의해야할 사고유형에 속합니다. 그만큼 축산농장을 오래 경영한 사람들이라면 그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겁니다. 정부에서는 “▲2012년 축산분뇨 해양투기가 금지되면서 축산분뇨처리가 양돈농가의 가장 중요한 현안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고 ▲분뇨자원화를 위한 저장·처리시설 및 관련 작업이 많아지고 밀폐시설이 도입이 많아지면서 분뇨 부패과정에서 발생하는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와 산소결핍에 의한 질식재해 보도 사례가 많아지고 ▲황화수소 발생의 원료가 되는 황 함량이 높은 주정박 사료 사용량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느는 것도 황화수소에 의한 질식재해 위험 증가의 원인으로 추정”하여 피해 유형에 따른 예방 대책 및 안전매뉴얼 <양돈 분뇨처리장 질식재해사례와 예방대책 (농촌진흥청,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 2013)>을 연구해 배포한 바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 안성시에서는 2015년에 축사의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악취와의 전쟁’도 벌이며 지역경쟁력을 꾀하고 있습니다. ([경기] ‘악취와의 전쟁’…냄새없는 축사 등장(YTN, 2015. 10. 12.))

 

제 목숨을 살지 못하다 가는 생명들을 돌보는 또다른 생명들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매뉴얼을 준수하면 발생하지 않을 사고들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같은 ‘생명’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맨몸으로 분뇨처리장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요. ‘어디서 굴러온 값싼 기계’ 같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더러움과 위험을 맡기고 끝내 그들의 삶은 일회용 소모품처럼 짧게 저물어버렸습니다. 마치 10살, 15살까지도 살 수 있지만 인간에게 고기를 내기 위해 6개월을 살다 가는 돼지들처럼요.

 

분뇨처리장 사망사고 이후에도 이주민들의 산재사고와 돌연사, 가족에 의한 사망사건 등 가슴 아픈 부고가 유독 많이 전해졌던 오월, 유월이었습니다.

 

대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故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 네팔의 사범대학 졸업 후 선생 대신 한국의 돼지농장행을 택한 청년의 사연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故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의 장례식장에 걸린 현수막에 씌어진 ‘산재 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