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난민 ①
난민에 대한 이해
글. 김대용
한국 사회의 특수성 :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혈연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 어린 단어는 마치 타 국가에 비해 깨끗하고 우수한 순수 혈통을 물려받은 국민이라는 의식을 사회 전반에 심어주었다.
부경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2013년 발표한 「헌법상 민족개념에 대한 소고」는 헌법에 들어 있는 ‘민족’의 개념을 찾아내 다문화·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맞춰 개념 수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소고에 따르면‘우리헌법 전문과 제9조, 제69조에는 민족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이는 임시정부 헌법과 건국헌법을 위시하여 역대 헌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민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와 남북 분단의 냉전을 거치면서 단합하여 배척해야할 대상이 100년 이상 지속적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라고 이 글은 말한다. 충분히 합리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뿐 아니라 세계는 글로벌화 되어가고 다문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혈연에 기반한 민족 개념의 강조는 ‘우리’의 개념을 협소화시키고, 협소한 ‘우리’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여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낮은 난민 인정률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이주민에게 보여주는 폐쇄성은 순혈주의적 민족 개념이 깊이 뿌리박힌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최근 유럽 사회에서 보듯이, 민족의 개념이 우리 사회처럼 뚜렷하지 않은 사회도 단지 불황에 따른 실업 증가와 가계소득 감소 등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짐에 따라 현실 문제의 모든 원인을 이주자들에게 돌리고 이주자들을 향해 집단 혐오와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우경화가 우리 사회라고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순 없다. 이런 우경화 경향들이 민족이라는 상상적 이데올로기와 만나 부정적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다면 우리사회에 큰 불행이 닥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민족 개념이 내면화된 우리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난민 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개념 및 한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1)(이하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을 “1951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서, 또한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그러한 사건의 결과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상주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로 정의한다.(제1조 A항)
1)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은 국제사회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난민에 대한 다자 조약이다. 1951년 7월 제네바에서 채택되었다. 보통 난민협약이라고 부른다. 난민협약에서는 조약이 적용되는 시간적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간적 제한은 1967년에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보통 난민의정서라고 부르는 조약에 의해 철폐되었다.(위키백과)
1차와 2차 세계대전을 지나온 1951년 이후에는 난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약속이 있었을까? 난민협약에서의 난민은 1951년 이전이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었다.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가 발효되어 난민협약이 갖는 시간적 지리적 제약을 제거하고, 자국을 찾아 온 난민의 강제 송환을 금지함으로써 체약국들에게 일반적으로 난민을 보호할 의무를 규정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난민 협약상 난민의 개념은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 사유가 매우 제한적이며, 시민적,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 난민의 개념에 포함되고, 식량, 건강권, 교육권 등 사회적인 권리를 침해받은 경우에는 난민의 개념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자연재해, 전쟁·기타 분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은 보호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오승진, 「냉전종식 이후의 난민개념의 재검토」) 게다가, 강제 송환의 금지 의무 또한 강제력이 없이 유입국의 관용을 바라는 정도로 지켜지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난민의 발생 원인
1951년 이전의 난민은 주로 유럽인들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 사이, 대다수가 다민족 국가였던 유럽을 휩쓸고 간 전체주의의 미친 바람이 원인이었다.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 소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만인의 만인을 향한 전쟁’이 진행되면서 국적을 차지한 자에게는 인권이 보장되지만 국적을 박탈당한 자들에게는 인권이 유린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국가를 갖지 못한 채 떠돌게 되었고 난민이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러한 상황을 “그 상황은 앞서 일어난 내전보다 더 피비린내 나고 잔혹했을 뿐 아니라 민족이동을 가져왔다. 이 집단들은 종교전쟁으로 이동한 행복한 선배들과는 달리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고 어느 곳에서도 동화되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자 마자 그들은 노숙자가 되었고, 무국적자가 되었다. 인권을 박탈당하자 그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지구의 쓰레기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20세기 말에 발생하는 난민은 다른 원인을 갖는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내전이나 내란, 기아 등으로 특정 지역에서 한꺼번에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힘의 균형추가 상실되면서 각지에서,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내전이나 내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이런 내전들은 인종분쟁이나 종교분쟁의 성격까지 띄고 있어 난민 발생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난민들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데는 개인의 자아성취를 위한 욕망이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 만나 필자와 대화를 나눈 나이지리아에서 온 난민 신청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원서를 썼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합격을 기원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의 난민에 대한 심사, 인정 및 처우
한국의 난민에 대한 심사 및 인정과 처우는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난민법」에 따라 법무부에서 담당한다. 「난민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출입국관리소가 관장하고 있었는데, 출입국관리소는 불법 입국인 등의 입국허가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서 난민 관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고 실제로 인권을 훼손하는 일이 많았다. 다행히 2009년 5월 「난민 등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고 법무부 산하의 전문 지식인들로 구성된 ‘난민인정위원회’가 난민 심사 및 인정 절차를 관장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난민신청자 대비 위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 원활한 심사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거나, 비슷한 이유에서 난민신청자를 직접 인터뷰하는 횟수가 제한적이고 주로 서면으로 심사가 이루어진다는 점 등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 현실이다. 이런 현실들은 난민 인정 심사가 한없이 늦어지거나, 정확히 판단되지 않고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라는 부제를 달고 발간된 책 『내 이름은 욤비』의 저자 욤비 토나는 6년 만에 가까스로 난민으로 인정받게 된 과정을 책에 상세히 적어 놓았다. 욤비 토바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정보원으로 일하던 중 당시 권력자의 매국적 비리를 폭로하고 죽음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를 피해 태국과 중국으로 피신했으나 계속되는 위협으로 결국 한국에 피신해 왔다. 한국에 도착한 욤비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콩고에서의 위협과 공포, 박해 가능성을 신청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조건을 채우지 못해 난민 신청은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콩고에서 증거물을 가져와 제출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난민 인정이 거부되었다. 결국엔 행정 소송을 제기, 재판장에 가서야 6년 만에 난민 자격을 얻게 된다. 욤비는 난민 자격을 얻고서야 비로소 콩고에 숨어 지내던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가족과 상봉할 수 있었다.
이어읽기: 한국 사회와 난민 ② 동두천의 아프리카 난민
<참고 자료>
1. 오승진, 「냉전종식 이후의 난민개념의 재검토」,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공익인권법센터, 『난민의 개념과 인정절차』, 경인출판사, 2011
2. 김민철, 『국제난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2012
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과 난민(유엔 인권해설집)』, 2005
4. 욤비 토나, 『내 이름은 욤비(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출판사‘이웃’, 2013
5.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951
김대용 | MWTV 이주민방송 운영위원, 더불어꿈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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