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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VOM피플]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뭉친 캄보디아 노동자들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만나다

이주민방송MWTV 2023. 3. 11. 15:03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뭉친 캄보디아 노동자들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만나다

 

‘크메르노동권협회’. 언뜻 들으면 캄보디아에 위치한 노동조합을 연상시키는 이 모임은 재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뜻으로 2013년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 이래로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많은 단체들이 생겼으나,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자격 및 언어 등의 한계로 주로 한국인 활동가가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해왔다는 점은 이러한 단체들에서 이미 자각되어온 문제였다.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이주민 자조모임들은 함께 명절을 쇠거나 여가 활동을 하는 친목도모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면 크메르노동권협회’(이하 싸마꼼. 싸마꼼은 ‘모임’이라는 뜻의 크메르어이다)는 어떻게 ‘서로가 돕고 공동으로 행동하기’를 실천하고 있을까? 싸마꼼 활동가들이 보내는 하루를 가까이서 보며 알아보기로 하였다.

 

싸마꼼 임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지구인의정류장’(이하 정류장)이었다. 정류장은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상제작교실에서 시작해 현재는 노동상담 등 전반적인 이주민 지원활동을 해오고 있는 단체로, ‘크메르노동권협회’ 시작의 기반이 된 단체이다. 정류장의 영상관련 활동에 참여했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로서 가지는 문제의식을 나누게 되면서 싸마꼼 준비위원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싸마꼼에 가입했던 회원들은 500명 이상으로, 주로 농업종사자가 많은 편이지만 제조업과 건설업 노동자들도 속해 있다. 임원들 역시 모두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며, 평소에는 수도권 각지에 흩어져 일을 하다가 주말에 안산에 모여서 교육과 회의, 후원행사 등 협회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정류장에는 이미 이른 시간부터 크메르노동권협회의 운영진들이 모여 국제식품연맹(IUF) 아시아태평양지역위원회 히다얏 그린필드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갖고 있었다. 그린필드 사무총장이 영어로 말하면, 한국 활동가가 한국어로 통역을 하고,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가 크메르어로 다시 전달하는 식이었다. 이중통역의 번거로움 속에서도 집중을 잃는 이는 없었다. 느리지만 차례차례 싸마꼼이 속한 IUF의 지역 매커니즘과 의결 절차가 어떻게 구성되며, 그 안에서 싸마꼼이 어떤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토의를 이어나갔다. 싸마꼼 대표들은 협회의 임원이자 한 사람의 이주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들이 전체의 문제를 바라보기 힘든 상황에 공감하며 구체적인 질문과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점심시간을 넘겨 진행되는 면담을 싸마꼼 임원 중 한 명의 고마운(?) 제의로 다음주에 이어가기로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일정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싸마꼼의 자율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사무국과 회계 역할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정류장에서 다방면으로 도움과 조언을 받아왔지만, 싸마꼼의 운영 전반을 독립적인 역량으로 감당하기 위해 조직을 이끌어가는 모든 임원들이 교육에 참여해야 했다. 교육은 수입과 지출 등 재정관리의 기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해 회원가입 및 후원자 관리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하여 진행되었다. “각자 회원가입신청서를 써서 옆사람과 바꿔보세요. 잘 썼는지 아닌지 확인해봅시다.” 교육을 진행한 정류장 최종만 사무국장의 말에 다들 쪽지시험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짝궁과 교환한 후에는 일시후원인지 정기후원인지 표시되었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는 없는지 등 꼼꼼하게 체크하였다. 재정과 시스템을 다루다 보니 어렵고 지루한 내용일 수 있었지만 다들 열의를 가지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주의 후원행사에 대한 점검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일주일에 하루 얻기도 힘든 금쪽같은 휴일 모두를 싸마꼼 활동을 위해 투자한 셈이다. 지쳐있는 활동가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짧은 인터뷰를 부탁했다. 2기 때부터 싸마꼼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스레이나씨와 적극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던 예비활동가 다라씨가 참여해주었다.

 

Q. 오늘 하루 수고많으셨습니다. 싸마꼼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2013년 1월에 이미 크메르노동권협회를 세우기 위한 준비위원회가 시작되었었고, 저(대표 스레이나씨)는 4월 경에 고용주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지구인의정류장으로 노동상담을 받으러 왔었어요. 그 때 쉼터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때마침 싸마꼼 준비위원회에서 쉼터에 와서 협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많이 했었고요. 처음에 회장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고 일손이라도 도우려고 대의원에 입후보했었는데, 결국 대표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Q. 교육 받으시는 모습에서 활동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습니다. 싸마꼼의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A. 개인적으로는 싸마꼼 활동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협회 입장에서 보자면 개인적으로 문제를 맞닥뜨리는 이주노동자들이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공적인 장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또 노동문제가 생기면 불가피하게 직장을 바꿔야 하게 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머물 곳이 딱히 없기 때문에 쉼터 사업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저희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예요.

 

Q. 그럼 지금 싸마꼼에서 진행하고 있는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일을 못하게 되거나 직장을 바꿔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여성과 남성노동자 쉼터를 각각 운영하고 있고요, 그 다음은 정류장과 협력해서 고용주와 이주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있을 때 노동자들을 대신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내서 노동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된 한국어와 컴퓨터, 그리고 이주제도와 법률에 관한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Q. 가장 궁금한 점인데요, 다른 이주민모임과 비교했을 때 싸마꼼만이 가지는 고유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거예요. 이주민 모임들에는 다양한 목적들이 있어요. 종교적인 성격도 있고, 단기적인 행사를 여는 곳, 교육을 주로 제공하는 곳도 있고요. 저희 역시 명절행사 등 즐거운 성격의 행사들도 가지지만,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물론 권리 구제를 담당하는 이주민지원단체들도 있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노동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저희 역시 같은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지원하는 데 있어서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것 같아요.

 

Q. 두 분이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A. 먼저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국말을 배워왔으면 좋겠어요.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또 고용허가제 등 노동자와 관련된 한국의 법에 대해서 알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가치에 대해 존중해주었으면 해요. 노동에 국적이 어디 있나요? 우리 이주노동자도 같은 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또 아직도 이주노동자들에게 명령하고 몰아치는 고용주들이 많은데,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국 정부에도 하고싶은 말이 많아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있는데, 그것에 관해 노동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은 많은 반면, 고용주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일방적으로 사용자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싸마꼼 활동가들의 하루는 그 자체로 다양한 이주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료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각지에서 모여 열정적인 태도로 교육을 받는 캄보디아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내고자 하는 지구인의정류장 활동가들, 또 아직 세워져가는 단계의 싸마꼼에 성실한 국제연대의 의지를 보이는 IUF의 존재가 모여 싸마꼼이라는 그물을 엮어내고 있는듯 했다. 싸마꼼 대표 스레이나씨의 말처럼, 싸마꼼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의 활동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 기대와 관심이 집중된다.

 

 

글 | 이다솜 MWTV 기자단 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