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MWTV의 시작을 만나다
이주민방송 이병한 초대 공동대표 인터뷰
시민사회 시스템의 부재, 이주민들의 정보권·문화권에 대한 고민에서
MWTV와 이주민영화제 처음 시작 돼…
형식은 바뀌어 나가도 문제의식은 이어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건희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병한(이하 병한) 저는 원래 미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미술을 하고 있고요. 사실 이주민 문제하고는 전혀 접점이 없을 수도 있는 분야이긴 해요.
건희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이주민방송에서 활동을 하시게 되셨나요?
병한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씩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예술은 삶, 삶 그 자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미술을 하면 갤러리에다가 작품을 전시하고, 그러면 돈 많은 사람들이 그걸 사가다가 집에 전시하고. 그게 삶일까? 예술이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이런 것밖에 없을까? 이런 의문들이 생긴 거죠.
그리고 20여 년 전에는 한국의 사회 분위기가 지금보다도 훨씬 암울했어요. 그런데 예술가로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밖에서는 데모도 하고 그러는데 방에 틀어박혀서 좋은 질감, 좋은 색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들이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90년대 초반에 훌쩍 독일에 가 버렸어요. 거기 가보니까 느끼게 되는 점들이 많더라고요.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자기들이 만들어 나간다고 할까요. 정치인들한테 일을 맡겨두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불의를 보면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있고요.
“결국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게 아닐까.”
건희 그런 경험을 해보시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으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병한 그럴 수도 있지만, 지내다 보니까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과실을 따먹기만 한다는 게 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요즘 헬조선 헬조선 하는 말들이 많기도 하지만, 결국 이런 시스템을 만든 건 우리니까요. 시스템 안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내가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우리가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결국 한국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돌아와서는 작가들 커뮤니티라던가, 대안적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쭉 관심을 가졌었어요.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이, 제가 귀국하고 몇 년 후 시민방송 RTV가 문을 열었어요. 거기에서 미디어플러스아트라는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게 되었죠. 그렇게 방송하고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던 거예요.
건희 RTV 활동이 이주민방송 활동으로 이어지셨군요.
병한 그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고요. 믹스라이스라는 팀이 이주민들하고 만든 작품을 하자센터에서 발표하는 자리에 가게 된 일이 있었거든요. 발표가 끝나고 토론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거기서 그 작품을 시민방송으로 내보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자리에 있던 마붑씨가 저한테 먼저 말을 거셨어요. 그 당시는 사실 명동성당 농성이 정리단계였던 걸로 알아요. 여하튼 자기들도 이런 걸 통해서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럼 기술적인 부분은 내가 책임질테니 내용은 여러분이 맡아서 같이 가보자. 이렇게 MWTV가 처음 시작된 거죠.
(편집자주: 방글라데시 출신의 마붑, 버마 출신의 뚜라, 그리고 네팔 출신의 해미니, 한국인 이병한 이렇게 4명의 공동대표로 MWTV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방송을 시작하다
건희 초창기 MWTV의 모습도 궁금하네요.
병한 처음에는 이주민들의 상황을 알리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었죠. 이주노동자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이주민들이 직접 패널으로 나와서 한국의 이주노동 관련 현안이나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거예요. 이주민들이 방송에 나와서 직접 자기 얘기를 하는 셈이니까 이게 처음에는 쇼킹했을 거예요.
그 방송을 진행하다 보니까 이주노동자들의 정보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죠. 이주노동자들이 커뮤니티에서 나름의 정보를 얻기는 하지만, 그들의 말로 한국의 이슈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럼 그것도 우리가 한번 해보자 해서 두세 달쯤 후에는 5개 국어로 진행되는 ‘다국어 이주노동자 뉴스‘를 시작했죠.
건희 굉장히 의욕적으로 출발하셨군요.
병한 사실 그래서 고생도 많이 했었죠. 다들 뉴스 제작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제작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고요. 인력도 넉넉지 않았지만 열의가 대단해서, 러시아어 방송을 진행하던 분은 출산 전날까지 방송을 녹화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그만큼 보람차기도 했었죠. 일단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한번은 출입국관리소에 취재를 갔는데 거기 직원이 우리를 보고 방송 잘 보고 있다고 인사를 해서 놀랐던 적도 있어요. 그 때 우리 방송을 보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걸 느꼈죠.
이주민영화제의 시작
건희 이제 슬슬 이주민 영화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데요. 지금까지 해주신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주민 방송도 영화제와 크게 연관되는 활동을 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어떻게 해서 이주민 영화제를 시작하게 되셨던 건가요?
병한 이주민들이 누려야 할 문화권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이주민들을 한국 문화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우리는 좀 더 다문화적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해야 이주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또 뉴스를 들다 보면,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워낙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계속 사람이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거나 하는 내용의 뉴스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많이 지쳐가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김홍진씨가 아이디어를 낸 거죠. 영화제를 한 번 해보자. 문화활동에서 소외된 이주민들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자신들이 직접 재능을 발휘해서 직접 영화제작 등의 문화 활동을 해 볼 수 있게 자극이 될 수도 있겠다. 듣고 보니까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영화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그때 같이 활동을 하던 미누씨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문화권에 관심이 많았어요. MWTV에 이주민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넣어보고 싶어 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문한 자체에 대한 다양한 관심들이 영화제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처음의 문제의식이 지속된다면 좋겠어요.”
건희 영화제 진행하시면서 어려운 점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병한 그럴 수밖에 없었죠. 뉴스 제작했을 때도 그랬지만 관련해서 아무런 경험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일을 해 나간 거예요.
언어 문제에서 제일 큰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자막을 만들 때 한국어, 영어로만 자막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상영하려고 가져가 보니 영어와 한국어 둘 다 능숙하지 않은 이주민들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중간에 나가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한번은 번역과 자막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서 극장에서 한 작품을 상영하는 중에 열심히 다음 작품의 자막을 만들어서 퀵으로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첫 영화제을 진행했던 거죠. 즉석 불고기 식으로요. (웃음)
건희 혹시 영화제에서 틀었던 작품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병한 1회 때 개막전으로 틀었던, 그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이 기억에 남네요. <동물농장>이라는 클레이메이션이었는데요, 사실 그렇게 좋은 기억만은 아니에요. 인권위원회 상도 받고 그런 작품이기는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내용이 좀 논쟁적이었거든요.
서로 다른 동물들이 어울려 살아가게 되는데 서로간의 노력으로 갈등을 해소해서 서로 융화되는 내용은 안 나오고 외부의 힘센 존재가 와서 힘으로 제압해서 같이 살게 되는 그런 식이었어요. 상영했을 때 반응은 좋기는 했는데, 제 기억에는 좀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 내용이었던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그 뒤로도 개막작들이 좀 논쟁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웃음)
건희 또 어떤 논쟁적인 작품들이 있었나요?
병한 2회 영화제 개막작이 세르지오 아라우 감독의 <멕시칸이 사라진 날>이라는 영화였거든요.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든 멕시코계 사람들이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부잣집 가사도우미도 사라지고, 청소할 사람도 사라지고, 뉴스 앵커도 사라지고. 백인인줄 알았던 이웃들도 사실은 멕시코계 혈통이 섞여 있었는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혼란이 시작되는 거죠.
건희 거기까지는 흥미로운 내용일 것 같은데요?
병한 흥미롭기는 한데요, 영화에서는 그 사람들이 사라지니까 제일 큰 문제가 막노동이나 허드렛일을을 할 사람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이 지점이 좀 애매했던 것 같아요. 이주민들의 사회적인 가치나 존엄성, 이런 것들을 다 노동력으로 치환시켜버리는 것 같아서요. 그것도 싼 노동력으로요. 물론 코믹하고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건희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그렇기도 하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병한 네. 아, 너무 애매한 영화 얘기만 드린 것 같은데, 좋게 봤던 영화도 하나 정도는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수입아내>라는 대만 다큐멘터리였는데요. 옴니버스 식으로 몇 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데 결혼 이주 여성과 남편의 갈등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이에요. 이 영화도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민거리를 많이 안겨줄 수 있을 거예요.
건희 예. 꼭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이주민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병한 이번에 진행되는 영화제가 제가 진행했던 것과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이런 영화제가 1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적이고 훌륭한 일이 아닐까 해요. 그동안 개최된 영화제들이 우리 사회에 이런저런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도 많이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영화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같은 처음의 문제의식들이 잘 표현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글 | 한건희 MWTV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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