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이후 난민이 되어 캐나다에 정착한 저자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책 『루 RU』는 킴 투이의 장편 소설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어린 시절 부유했던 자신의 삶이 실은 서구적인 부르주아적 삶이었음을 드러낸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베트남이 공산주의 사회가 되었을 때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었을 상황과, 사유재산을 빼앗기면서도 금과 다이아몬드를 숨겨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전쟁에서 살아남아 도망친 자신들의 가족사를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기억해 내고 현실을 이어 서술하고 있다. 읽다 보면 자세한 묘사가 없음에도 특히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은유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캐나다 남자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자폐증임을 드러낼 떼 엄마로서 가 닿을 수 없는 상황을 캐나다에 처음 이민 온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전환한다. 그래서 난민이 된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 알게 된다. 베트남어를 말하는 나라는 존재가 가 닿을 수 없는 낯선 나라의 언어는 그들의 일방적인 소리가 내게 와 흡수되지 않고 부딪치고 흩어지는 공허한 말이 되는 경험의 설명이 된다. 그렇게 살아 온 그녀에게 고향처럼 그립고 안정된 느낌을 문득 남편의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의 냄새로부터 얻는다. 난민으로 도착한 나라의 계절에 맞지 않는 옷 차림이나 퀴퀴한 냄새는 그 사회로부터 느끼는 불안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섬유유연제 냄새가 정착이라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특권을 가졌던 자들의 도망이라고 비난하고 싶었다가도 이데올로기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를 벗어나 형벌처럼 난민이 된 이들이 가난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성장해야만 했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진다. 금니로 이를 씌우고 다이아몬드를 숨겨 브로커에게 줄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탈주자들의 특권과 모든 소유를 박탈 당하고 자발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추방이나 다름없는 익숙한 땅으로부터의 버려짐 사이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일 것이다. 난민은 영웅이 아니므로, 그녀가 말했듯이 영웅은 그 땅에 남아있는 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민의 경험은 다른 여성들이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 살아남으려 애쓰는 그 낯선 땅과 다른 곳에서 여성의 몸에 남은 상흔을 본다. 이것은 몸에 새겨진 흉터라고 말한다.
“몬트리올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스스로 원해서 일부러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자신의 살갗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그려지기를 바라는 여자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조용히 기원하게 된다. 저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지워지지 않는, 하지만 너무 깊이 있어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흉터를 지닌 다른 여자들을 만나게 되기를. 마주 앉아 서로 비교해보기를. 원해서 낸 흉터와 원하지 않으면서 당한 흉터, 일부러 돈을 써야 만든 흉터와 돈을 버느라 얻은 흉터, 눈에 보이는 흉터와 짐작하기도 힘든 흉터, 살갗 표면의 흉터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흉터, 살갗 표면의 흉터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흉터, 모양을 그려놓은 흉터와 형태 없는 흉터를.”(176P)
이 흉터란 베트남의 역사를 짊어진 모습이라고 말한다. 난민은 동일하지 않은 자신만의 경험을 가지고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 그건 내가 태어난 땅의 긍지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일이며 여성이라서 또 다르게 경험하는 삶이다. 여성이어서 겪어야 하고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겪어야 했던 그런 삶이 이 책에서 가족과 친척이라는 혈연 속에서 이야기 된다. 흑백의 이분법적인 판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의 삶이 있고, 그것을 겪어내는 머리가 있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새겨지는 일이다. 머리가 중요한 베트남 사람으로서 긍지와 사랑과 자부심이 타자의 잘못된 손길에는 모욕을 느끼는 신체이자 정신이다.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삶과 새롭게 적응해야 했던 낯선 땅에서의 난민으로서 살아야 했던 삶이 한 여성이 온 생애를 거쳐 스스로 해석해내고, 반추해내고, 정리해내는 과정이다.
책은 작고 읽기에 부담 없지만, 베트남 전쟁과 난민 그리고 이방인과 이주자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며, 어느 난민도 동일하지 않다.
글: 정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