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대신 초코파이, 개야도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인권침해
대탈출. 개야도(開也島)라는 섬을 탈출했다. 노동을 하러 한국을 찾았는데, 노예처럼 사람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사업주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켰다. 때리면서 욕하고, 밥을 안 주기도 일쑤였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일에 다른 일을 추가로 더 시키며 낮과 밤 없이 이주노동자를 부렸다. 이를 항의하자 돌아온 건 사업주의 겁박이었다.
그래서 섰다. 아니 서야만 했다. 2020년 10월 8일, 같이 탈출한 12명의 노동자들을 대표해 동티모르 이주노동자 Correia Cabral Apolinario(이하 아폴리)는 국회에서 증언했다. 아폴리 씨는 개야도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이 말하는 인권침해 실태는 무엇이었을까.
불법파견
아폴리는 2014년 6월에 E-9 취업비자로 처음 동티모르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 첫 방문 후 4년 10개월 정도 일했다. 열심히 일했던 덕분이었을까. 경험을 살려 아폴리 씨는 2019년 8월에 ‘성실근로자’라는 자격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그렇게 개야도에서 동티모르 출신 6명이 포함된 15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아폴리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는 줄 알고 섬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폴리는 가두리 양식장이 아닌 사업주가 선주로 있는 ‘어선’에서 일하게 됐다. 4월에서 8월은 배 위에서 꽃게와 주꾸미를 잡았다. 9월에서 3월은 김 양식장에서 일했다. 여기에 아폴리는 사업주가 소유한 밭에서 일을 하기도 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 안 된, 사전에 동의를 한 적이 전혀 없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월 209시간의 근로 계약을 체결했지만, 근로계약서대로 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명백한 ‘불법파견’ 그렇게 아폴리는 한 달에 약 390시간을 일했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다.
‘밥’ 대신 ‘초코파이’
개야도는 군산항에서 뱃길로 40여 분 걸리는 위치에 있는 섬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넉넉한 시골 인심을 자랑하는 휴양지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광하기 좋은 섬은 이주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는커녕 사업주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섬을 드나 들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통장과 여권을 뺏겨 어디로 쉽게 이동하지도 못했다.
아폴리 씨는 주장한다. 개야도에서 일하면서 아팠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몸 아픈 데가 늘어나는데 섬의 작은 보건소에서 진료만 봤다고, 이마저도 사업주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업주의 횡포는 아폴리 씨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같은 지역에서 일한 다른 이주노동자에게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개야도는 휴양지가 아니라 노동착취 현장이었다. 동티모르 출신 아폴리는 이렇게 일했다. 근로계약서와 상관없는 배 위에서 꽃게잡이를 했다. 사업주는 새벽 6시부터 아폴리를 부리기 시작,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바다 위에서 일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아폴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나오는 밥도 제대로 제때에 주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은 초코파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나마 쵸코파이라도 주면 다행이었다. 심지어 사업주는 밥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다. 사업주는 하루에 최소 11시간을 시키며, 쉬는 날 없이 매일매일 사람을 부렸다. 끼니를 거르고, 밥도 먹지 못하면서 쉰 날은 딱 하루였다. 아폴리는 2020년 설날 하루 휴일을 즐길 수 있었다.
받았다. 이렇게 일하고 아폴리 씨는 한 달에 총 얼마를 벌었을까. 곰팡이가 가득한 주거환경에서 월 359.9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받은 돈은 고작 190만 원이었다. 그동안 아폴리 씨가 일한 시간을 최저임금으로 환산했을 경우, 법정 수당을 제외하고 약 350만 원이 지급돼야 했다. 하지만 아폴리는 단 한 번도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노동착취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개야도 사업주는 일을 시킬 때든 아니든, 아폴리를 때리고, 욕하고 나무랐다. 폭력은 임금체불로 이어졌는데, 사업주는 주기로 한 날에 임금을 맞춰 주지 않고 늦게 주기를 반복했다. 최저임금은커녕, 최소 근로시간도 지켜지지 않은 열악한 근로 환경은 곧바로 임금 체불로, 그렇게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이에 아폴리 씨는 사업주가 고용허가제에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지키지 않아 항의를 했다. 아폴리는 같은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대표해 사업주에게 법과 원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무리한 부탁이었을까. 돌아온 건 사업주의 욕설과 폭언, 그리고 폭행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아폴리 씨의 목을 졸랐다.
그렇게 아폴리 씨가 개야도에서 일을 할 때, 150여 명의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폴리는 동향인 6명의 동티모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주의 폭언과 폭행 사실을 알렸다. 이주노동자들끼리 잘못된 상황을 공유하며 경찰에 신고도 했다.
인권침해
멈추고 싶었다. 아폴리 씨와 12명의 개야도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횡포를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노동착취, 폭언, 폭행 등의 인권 유린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 후, 개야도 사업주와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웠다. 불편하고 께름칙하여 다른 이주노동자와 함께 배를 타고 섬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인권침해를 당했다. 사업주도 모자라 개야도 주민 한 사람이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개야도에서 선박 표를 발권하는 아무개가 아폴리가 섬을 떠나려 하자, 조롱하고 무시했다. 표를 발권하던 개야도 주민은 섬 밖으로 탈출하려는 아폴리와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아유, 씨X”
이라고 했다. 욕설도 모자라 배표를 발권을 하던 주민은,
“새X야”, “X나 멍청해”
“이렇게 나가면 짐을 다 버려버린다”
라고 연이어 폭언을 하며 아폴리와 다른 이주노동자를 윽박질렀다. 그렇게 사업주의 노동착취에 개야도 주민의 인신공격이 더해졌다. 평상시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섬에서 육지로 나가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던 상황이 탈출을 할 때도 반복됐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개야도는 휴양지가 아니라 인권침해의 현장이었다.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
아폴리 씨와 같은 처지의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를 실시했다. 2020년 7월에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하루 평균 노동시간 12시간을 일했다. 그 과정에서 휴식시간은 고작 0.7시간이었다. 한 달 동안 일하고 평균적으로 0.1일의 휴일을 썼다. 개야도 이주노동자의 월 평균 노동시간 359.9시간이었다.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노예였다.
받아야 했다. 노동시간 대비 월 최저임금은 최소 309만 원을 받아야 했으나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임금은 188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 욕설과 폭언, 외출제한, 조업 중 식사 미 제공 등의 인권침해가 있었다.
지난 10월 8일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꼬집었다. 개야도를 시작으로 현재 열악한 근로 환경에 놓여 있는 전국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문제 삼았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같은 날 이재감 고용노동부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어업 분야는 육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행정력이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이주노동자 실태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음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꼴이었다.
덧붙여 이 장관은 “현재 개야도 문제를 토대로 전체 외국인 고용 사업장 15개에 대해 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언급, “군산지청에 여러 가지 진정을 넣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가이드라인과 방조
지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 이후, 현재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은 추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담당하는 강은미 의원의 비서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E-9 제도 개선을 산업인력공단에 요청한 상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개야도 이주노동자 문제 관련, “근로감독관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이후 추가로 받은 제보를 토대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개야도 어업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좀 쉴 수 있도록 휴일과 휴게시간이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에 명시된 규정을 준수하고, 그 내용을 지켜달라는 얘기다. 일한 만큼 임금을 주고, 적절한 치료와 의료보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요원한 상태다. 아폴리와 이주노동자들이 개야도 사업주를 신고하고 섬을 탈출했지만,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경찰에 이어 담당 기관의 무성의한 태도가 이들의 상처를 한 번더 할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으나 첫 번째 조사는 제대로 된 통역도 없이 진행됐다.
두 번째로 고용노동청은 사업주가 규칙을 위반한 사실과 다른 사업장에서 일했던 근로 시간 부분을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입증해야 된다”라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상 받기 어렵다”는 막막한 현실을 얘기했다.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자신들이 정한 표준근로계약서 가이드라인이 실질적으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이 겪은 문제들은 고용허가 단계에서 면밀한 심사를 거치거나, 정기적인 점검이 이뤄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인권을 보장 받고, 제대로 된 노동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행정력을 핑계로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사업주들의 탈법행위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착취를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코로나 19로 국제선이 끊긴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갇혀 있다. 사업주의 횡포를 벗어나고자 아폴리와 12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개야도라는 섬을 탈출했지만 이들은 현재 고용노동부의 무성의, ‘거주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나아지지 않는 상황, 섬에서 벗어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현재 또 다른 섬에 갇혀 있다.
글 | 정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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