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의 경유지, 람페두사섬의 의사가 전하는 고통과 희망
<소금 눈물>을 읽고서
아프리카와 인접하고 이탈리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람페두사섬은 난민들이 배를 타고 도착한다. 그 배들이란 산 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거나, 폭력을 당하거나, 굶주리는 지옥 같은 곳이다. 그렇게 짐짝처럼 실려 온 사람들의 상태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온전한 모습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임신한 여성들, 피부가 상한 사람들, 화염에 쌓인 배에서 불에 탄 채 내린 사람들, 폭행과 강간을 당하고도 밝힐 수 없는 미성년의 여성들, 오는 도중 엄마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아기들이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탈출하는 비용을 마련하고자 자신의 장기를 브로커에게 팔아서 생긴 적출된 흔적인 수술 자국을 지닌 채 도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서 당도했다. 살아서 당도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신이 되어 남의 손에 의해 운반되었다. 그 시신들은 작은 배의 밑바닥에서 질식사한 십 대의 청소년들이기도 했고, 난파된 배에서 미처 구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람페두사섬은 거의 매일 이러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수백 명씩 당도하는 섬이다. 그 섬에 산부인과 의사인 피에트로 바르톨로가 살고 있다. 람페두사 출신으로 의사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다. 난민들의 경유지가 된 람페두사 에서 난민을 위한 임시 거주처를 마련해주고, 본연의 임무인 의료 지원을 하고, 이산가족을 찾아주거나, 헤어진 고양이를 돌보다가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일까지도 한다. 이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협력자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일을 세상에 알려서 난민 문제를 함께 풀어갈 우리 시대의 과제로 가져오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잔프랑코 로시가 있다. 그의 작품 <화염의 바다>가 한국에서 2016년 EIDF에서 상영된 바 있고, 이주민방송MWTV의 씨네매점에서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그 영화의 실화가 담긴 책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2020년 5월에 나에게 당도한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난민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풀어낸 이 책은 한 사람의 의사이자 인권운동가로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협력하면서 지속해왔는지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웅 서사로서 그려내지도 않았고, 난민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았다. 다만 난민의 문제를 바로 코앞에서 바라본 생생한 경험과 난민들이 겪는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그 구조를 움직이는 인간의 잔학성을 드러내어 보여 줄 뿐이다. 그의 심경을 잘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
“때로는 이 일을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리듬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 특히 이토록 많은 괴로움, 이토록 많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동료들 가운데 다수는 내가 익숙해져 있으리라고, 사체 검안을 하는게 내가 상투적으로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확신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죽은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결코 익숙 해지지 않으며, 해난 사고중에 해산을 하고 나서 탯줄이 잘리지 않은 아기를 아직 몸에 붙인 채로 죽어 있는 여자들을 보는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 또한 시체에 번호만 남기는 것을 피하고, 누구인지 알아내어 이름을 주기 위해서는 시신에서 손가락이나 귀를 잘라내어 DNA를 추출해야 하는데, 그런 행위에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녹색 자루를 열 때마다, 처음으로 그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 어는 시신에서든 기나긴 여행의 비극을 증언하는 표시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22p)
그리고 이렇듯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좋을 수가 없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난민이다. 왜냐하면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은 약하고 감정적으로 상처받기 쉬우며 내적인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심리 치료사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의 병들이 생겼지만, 적절한 심리치료는 고사하고 당장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와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는 시간이 흐를 뿐이다. 시리아가 내전이 일어나기 전 다마스커스의 제레미야에서 본 이라크 난민들이 그러했고, 현재 난민이 된 시리아 난민들이 그러하고, 제주에 도착한 예맨 난민들이 그러할 것이다. 상상의 지점에 있지 않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린 그저 아는 척을 할 뿐이다. 고양이를 데리고 난민길에 오른 아이를 예맨 난민이 왜 핸드폰을 쓰냐며 항의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고양이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절망의 날들을 이기고 생존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족의 목숨처럼 소중하고 고양이 그 자체가 바로 잃어버린 고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 지킴이 단지 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생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자들이 붙들고 싶은 그 무엇이라는 것을 이 의사는 알았다.
“내가 운반용 케이지를 열자 고양이가 즉시 뛰어 올라 사마의 품에 안겼어요(중략). 그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예전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가족이었어요. 자기들 의지에 반하여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이 다시 진정으로 하나가 된 것이죠. 결국 고양이 한 마리가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그들이 집에서 진짜 집의 내음을 맡게 된 것이다.”
난민 동료가 집에서 개를 키운다고 했을 때, 나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인턴 월급 가지고 아내와 딸 그리고 개를 어떻게 먹여 살린 것인가만을 걱정했다. 난 그의 가족이 개로 인해 느낄 그 감정 보다 일용할 양식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그가 이상했다. 난민다움을 내가 상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이는 이런 비참한 난민은 아니지 않냐며 한국에 있는 난민들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어느새 난민다움이 마치 고통받음이 외부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온 그들이 람페두사에 도착한 난민들보다 상황적으로 나아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겪은 고통과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동안 일도 하지 못해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고, 사회 시스템과 언어 그리고 문화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한 그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2018년의 그 무서운 혐오 발언으로부터 생채기를 당한 난민들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도 국민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무리들이 있다. 그게 국익이라고 강력히 믿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잠재적인 난민이라고 글을 쓴 이주민방송의 난민 출신 포토저널리스트 무삽의 말처럼, 난민을 외면하고, 코로나19 재난 사태에서 그들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의 책임은 더 큰 재앙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느님이 인간의 이 모든 고통을 허용하고 있으니, 이따금 신앙이 흔들리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느님? 하느님이 무슨 상관인가?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하는님이 아니라 인간들이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인간들, 돈이나 권력 따위만 믿는 사람들, 단지 인신매매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신매매가 성행하도록 방치하는 사람들,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빈곤 상태에 그대로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부추기고 싸움질에 돈을 대는 사람들의 책임인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지 하느님이 아니다. 자기 나라에서 도망치기 위해, 너무 비싼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쪽 콩팥을 파는 것, 그건 매일 무수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오늘의 난민 사태에 있어서 한국은 자유롭지 않다. 그 구성원인 한국 국민들의 책임이 반드시 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맨 외 여러 분쟁국가들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평화유지군이나 재건사업에 뛰어든 기업들 그리고 무기를 팔아먹은 정부와 함께 하는 우리 국민의 책임이 없을 수가 없다. 참여도 침묵도 공모이다.
글 | 정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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