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친 2019년, 내년에는 이주민 권리 나아질까
연말을 맞아 2019년 한 해 이주민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돌아본다. 이주민의 살림살이,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제도적 권리 수준은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긍정적인 답변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주변의 이주민들에게 물어보아도 나아진 건 별로 없단다. 그런데 후퇴한 건 여러 가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이주민 권리는 뒷걸음질 쳤다고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여전히 사람이 숨지는 강제 단속
2018년에 김포의 건설현장에서 단속반원에 쫓기다 추락사 한 미얀마 노동자 故딴저테이 씨 사건에 대해 연초에 국가인권위에서 직권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법무부에 그의 죽음의 책임을 묻는 권고도 행해졌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서야 법무부는 권고에 대해 일부만 수용하는 입장을 밝혔다. 책임자 징계는 거부했고, 단속과정 녹화하라는 것도 거부했다. 단속과 구금에 대해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도 실질적으로 거부했다. 안전대책을 세우거나 직무교육을 하는 정도만 수용한 것이다. 그러니 단속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고 결국 9월에 김해 지역 단속에서 또 다시 태국인 노동자 아누삭 씨가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법무부는 책임을 회피했다. 인권을 표방하는 정부 하에서 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단속에 스러져야 하는가.
이주민 차별하는 건강보험
정부는 건강보험 먹튀를 방지한다며 7월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다. 기존에는 3개월 이상 체류하는 이들만 건강보험에 가입했고 지역가입자는 선택적으로 가입했었는데, 이제는 6개월 이상 체류하는 모든 이주민들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가입 대상을 늘렸다는 측면에서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직장가입을 못하는 이주민들에게 지역가입을 시키면서 일괄적으로 평균보험료를 내게 하였다. 11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더욱이 내국인은 가족이나 세대원을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이주민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인정해줘서 노모와 미취업 성년 자녀와 함께 사는 이주민 가정에 4명분의 보험료로 44만원이 부과되기도 했다. 또한 농어촌 지역에 사업자 등록이 없는 고용주 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존에 직장가입도 받아주지 않았는데 이번에 지역가입자가 되어야 했고 역시 11만원의 보험료 고지서를 받았다. 최저임금 받으며 숙식비로 20-30만원을 내는데 건강보험료를 이렇게 많이 내게 하니 보험료 징수율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부는 한 술 더 떠, 3회 체납하면 체류기간에 불이익을 주고, 4회째 체납부터는 체류허가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내국인들에게는 불이익이 없는데 말이다. 결국, 건강보험 차별폐지 공동행동이 만들어져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국회토론회를 하고 위헌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는데 바뀐 것은 없는 상황이다.
계속되는 인종차별 발언
정치인들의 망발도 계속되었다. 6월에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는 부산지역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똑같은 임금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중소기업중앙회 등 고용주 단체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차별 법안 발의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당대표까지 나서서 이를 옹호한 것이다. 기여한 바가 없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이주노동자는 80조원이 넘는 경제기여를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작년에 세금으로 8천억을 냈다. 최저임금 차별은 UN, ILO 협약 위반이며 헌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이기도 하다. 즉각적인 반발이 거세지자 황교안대표는 한발 물러서기는 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사업주와 그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이주노동자 차별 발언을 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장은 이주민 2세들에 대해 ‘잡종 강세’, ‘튀기’ 운운하며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발언을 해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의 이주여성 단체들이 익산시청 앞에 모여서 규탄을 했고 국회 앞에서도 시위를 하고 법무부 앞에서도 집회를 하였다. 익사시장은 사과를 하였고 전체 시공무원이 인권교육을 받아야 했다.
3D에서 4D로 이어지는가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곳은 소위 3D 업종으로,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어서 내국인이 하지 않으려는 일이다. 그런데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 원청이 책임지지 않고 하청과 비정규직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몇 년 전부터 지적되어 왔는데 사실 그 분야에 이주노동자가 다수 일하고 있다. 그래서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도 생겼다. 급기야 3D에 죽음(Death)이 더해져 4D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끊이지 않았다. 목동 빗물 펌프장 수몰 사고, 전남 담양의 지게차 후진 사고, 경북 영덕의 오징어가공공장 질식사고, 대전 금속제조공장 조형틀 깔림 사고, 평택 자동차부품공장 프레스 깔림 사고 등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너무나 많다. 1년에 100여 명이 산재로 숨지는데, 작년에는 136명이었고 2019년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산재로 잡히지 않는 과로사, 돌연사 등까지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중소영세 제조업, 농축산어업 등이 운영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6개월 넘게 공항에 갇혀 있다가 소송을 통해 나온 난민신청자, 열악한 환경의 외국인보호소에 1년 넘게 구금되어 있다가 숨진 난민신청자 등 난민들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남편에 의한 살해 사건도 또 다시 발생했다. 250만 이주민들의 처지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정부의 선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8월에 ‘전국이주인권대회’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우리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난민, 이주아동, 어선원 등 모든 이주민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서 더 연대하고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주민들의 목소리와 힘이 커지는 만큼 삶과 권리가 더 나아질 것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2020년에 전국 곳곳에서 이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행동이 더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글 | 정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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